1935
자동차 산업의 부정적인 태도에도 불구하고 임무를 맡은 팀은 포르셰 개인 작업실에서 “대중을 위한 차”를 염두에 두고 디자인에 착수하였다. 기술적 난관과 이상적인 해결책 강구로 인해 계약기간을 12개월 더 늘려야 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포르셰는 그의 팀과 “국민차”에 대한 여러가지 요구사항을 제시했다. 그러나 그러한 요구는 모두 비교하거나 경쟁하는데 대한 두려움이 없는 믿음직하고 경제적이며 무엇보다도 완벽한 자동차를 만들겠다는 그의 결심으로 묘사할 수 있었다. 비용에 상관없이 단지 이상적인 솔루션을 만들겠다는 목표 하에 창틀, 엔진, 변속장치 등의 기술적 혁신이 이루어졌다.
값싼 부품으로 대체할 수 있었음에도 전속력을 견디는 내구성을 위해 값비싼 공기 냉각형 수평 대립 엔진을(air-cooled horizontally opposed engine) 선호하였다.
안정성을 위해 바닥은 값싼 철판과 나무 혼합 대신 얇은 금속판으로 전체 마감되었다. 포르셰가 만든 토션 바(torsion bar) 완충장치는 최고의 주행 안정성과 편안한 승차감을 제공하였다. 또, “국민차”가 승객에게 제공하는 편이성은 타 차량들과 비길 데가 없었다. 도구는 잘 정리되었고 표준에 맞게 난방이 되었는데 그 당시 더 큰 자동차들도 제공하진 못하는 난방 수준이었다.
1935년 10월 첫번째 견본 모델이 비밀리에 완성되었다. 사람들은 이 디자인이 훗날 독일 제품의 품질을 상징하는 가장 유명한 제품 중의 하나가 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이 차는 매우 이상해보였고 마지막 디자인과 상당히 달랐다. 두드러진 후면 창과 운전대, 범퍼가 아직 디자인되지 않았다. 헤드라이트는 여전히 트렁크 문짝에 있었다. 문은 후면에 달려있었고 1938년 최종 견본에서 미국의 영향을 받아 변형되었다.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후속 모델과 비교해볼 때 철제 차체, 5인용 공간, 다른 디자인과 구분되는 만족스러운 성능 등 “국민차” 초기 견본은 현대 소형차 구조의 표본이 되고 있다.
더욱이 기술적인 관점에서 경제적이었다. 무엇보다도 이 차는 자동차 업계에 있어 한편으로는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 내고 다른 한편으로는 독일 국민들의 자동차를 소유할 수 있는데 일익을 담당했다. 1936년에는 49명중 한명 만이 차를 소유했었다.